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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31일 월요일

팝의 2대 디바 셀린 디온



팝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세계 3대 디바로 불리는 전설.
마돈나 다음으로 많은 앨범을 판매한 여성 가수

셀린 디온 (Celine Dion | Celine Marie Claudette Dion) 가수
출생
1968년 3월 30일, 캐나다
신체
171cm
가족
배우자 르네 앙젤릴
데뷔
1990년 1집 앨범 [Unison]
수상
2012년 밤비 미디어 어워즈 연예부문상
2008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캐나다의 가수 겸 배우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다른 두 명과 달리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이 항목도 3대 디바 중 가장 늦게 작성되었다. 이유는 알려진 대로 뜬 시기가 가장 늦었으며 더불어 음반도 내느라 빌보드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실제 디옹이 슈퍼스타로 떠오른 3집 활동 시기는 3대 디바 어쩌고 할 때인 90년대 초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보다 늦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쪽 인기는 타 디바들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프랑스어가 되니까 흔히 머라이어 캐리보다 먼저 데뷔했음에도 셋 중 가장 막내라고 하는데 뜬 시기는 머라이어보다 시기가 늦기 때문이다.(영어권 한정). 영국에서 싱글을 2백만 장 이상 판매한 기록을 보유한 여성 아티스트이며, 1억 6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 앨범과 싱글을 합친 판매량은 2억 장이 넘는다.
2014년 들어서 무기한 활동중단 소식을 밝혔다. 그러다 2015년 다시 복귀를 선언하고 라스베가스 쇼를 재개하였다.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서 태어나 12살 때 'Ce n'etait qu'un reve (그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이라는 곡을 작곡하고 녹음했다. 셀린의 오빠는 이 곡의 데모 테이프를 '르네 앙젤릴'이라는 매니저에게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자 자동 응답기에 "당신은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들어봤다면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으니까요."라고 남겼다. 오빠의 패기 데모 테이프를 들은 후 르네는 그 즉시 셀린에게 연락을 했고,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셀린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부부의 인연까지 이어진다. 26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프랑스어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1982년 'Tellement J'Ai d'amour pour Toi'라는 곡으로 일본 야마하 국제 콘테스트에서 금메달을, 'Ne partez pas sans moi'란 곡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그랑프리를 따기도 했다. 이 노래는 본인이 노래를 했다. 작사는 그리스인, 작곡은 스위스인이 했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ESC) 1998에서 스위스 국가 자격으로 출전했다. #. 여기 우승에 얽힌 비화가 있다. 마지막 판정 직전까지 2위였던 스위스가 1점 차이로 영국을 역전하며 우승했다. ESC 1988 판정은 각 나라마다 10국가에 1-12점씩을 주었는데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심판에게 6점을 받아서 최종 137점을 얻은 스위스의 셀린 팀이 우울해하고 아직 점수 호명이 안된 영국이 좋아라하면서 영국의 우승이 확정되나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영국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디옹이 우승을 거두었다. 호명 직후 셀린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 전역에만 국한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셀린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고선 '나도 저 사람처럼 수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르네가 영어로 앨범을 녹음해야 가능할거라고 충고했다. 그때부터 셀린은 가정 교사를 두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1990년 영어로 된 데뷔앨범 'Unison'을 발표했다. 아하와 같은 가수의 프로듀서였떤 크리스토퍼 넬을 주축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댄스곡과 락발라드가 적절히 배합된 앨범이었다. 첫 싱글 '(If There Was) Any Other Way'는 빌보드 싱글차트 35위에 올랐지만 셀린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다른 발라드 곡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였다.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른 곡으로 빌보드 연말차트 37위에 랭크되었다. 이곡은 폭팔적으로 터져나가는 발성의 락발라드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디바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가창력일뿐,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때까지는 저 둘과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디옹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알아도 누가 그 노래를 불렀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노래가 아닌 자기 이름을 알린 것은 'Beauty And The Beast'부터 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앨범이 미국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려 영어권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를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으로 부르고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격려하는 곡인 'Voices That Care'에서도 여성 솔로파트를 맡는 등 인기가 날로 더욱 높아져 갔다. 여세를 몰아 발표한 2집에서도 'If You Asked Me To', 'Nothing Broken But My Heart', 'Love Can Move Mountains' 등의 히트곡이 터져나왔다. 이곡들은 셀린과 많은 작업을 한 여류 히트메이커 다이안 워렌의 곡들로 모두 빌보드 40위권에 안착했다. 또한 프린스가 작곡해준 with this tear는 그녀의 가창력이 폭팔력 뿐 아니라 섬세함이 더해짐을 증명해준다. 이 앨범에서는 멜로디 메이커 월터를 주축으로 만든 앨범으로 1집보다 훨씬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Beauty And The Beast'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 셀린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셀린을 세계적인 수퍼스타이자 디바로 만들어 준 앨범은 3집 'The Colour Of My Love'였다. 1집에 참여했던 보디가드를 통해 한창 주가를 올리던 히트맨 데이빗 포스터를 주축으로 한 앨범으로 첫 싱글 'The Power Of Love'는 그녀의 첫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이 되었고, 1  그 밖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제가 'When I Fall In Love'을 통해 다시 영화 듀엣곡으로 중박정도 사랑을 받고 misled 같은 곡으론 댄스에도 도전했다. 특히 'Think Twice' (영국 차트 1위)같은 곡은 미국에서는 망했지만 영국에서는 그녀의 대박 히트곡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1,8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국내에서는 'The Power Of Love'는 우리나라에서 TV는 사랑을 싣고의 주제가로 쓰이기도 해서 인지도가 높다.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탈때의 공연. 디옹이 차고있는 목걸이는 영화에 나오는 그 보석 맞다.
이런 활발한 영어 앨범 활동중에도 그녀는 꾸준히 프랑스어 앨범을 발매했는데 특히 1995년 발매된 D'eux는 프랑스어 앨범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장자크 골드만이 메인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프랑스 내에서만 4412100장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앨범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프랑스에선 44주간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다음 앨범인 Falling into you 역시 이 앨범에 밀려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4집 'Falling Into You'는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는 3,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Because You Loved Me',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그리고 국내에서 오빠 만세로 잘 알려진 'All By Myself' 등이 히트했다. 디온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두 앨범 중 하나인데, 5집이 'My Heart Will Go On'에 집중된 인기라고 한다면, 4집은 'Because You Loved Me'가 대표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고루고루 인기를 얻었다. 3집 때까지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콩라인이던 셀린 디옹은 이 앨범으로 소니애서 가장 중요한 가수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Because You Loved Me'는 영화 '업클로스 앤 퍼스널 (Up Close And Personal)'에 삽입되어 메가 히트를 쳤고 빌보드에서 6주간 1위를 했으며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거의 1년 동안 랭크되어 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당연히 투어도 대박을 쳤으며 첫 내한 공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다음 해 발표한 5집 'Let's Talk About'도 천만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 3,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히트곡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렵 그녀의 앨범이 1초당 1장씩 팔려나간다는 통계 자료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OST 역시 3천만장이 넘게 팔렸는데, 이 앨범은 'My Heart Will Go On' 이외의 트랙이 전부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 곡의 힘이 컸다. 사실 본 앨범에서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싱글은 'My Heart Will Go On'을 제외하면 별로 히트한 싱글이 없었다. 게다가 곡의 싱글마저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매진이 되었다. 소니의 대표적인 병크 중 하나인 듯. 그런고로 그 해에는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5집과 타이타닉 OST 양 쪽 모두 3천만장이 넘게 판매된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기록. 보통 2~3년 틈을 두고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팝계에서 다작을 하면서도 이렇게 메가 히트를 시켜버리니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달렸다.
이후 크리스마스 앨범과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R. 켈리와의 듀엣 'I'm Your Angel'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는 등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롤 음반들 중 하나이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로 유명한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 음반보다도 미국 내 판매량이 근소하게 앞섰으나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머라이어의 앨범이 더 잘팔려서 지금은 추월당했다.
이 당시 그녀의 베스트 앨범 'All The Way'를 발매하는데 2,400만 장이라는 베스트앨범으로선 믿기 힘든 판매량을 기록한다. 다만 여기엔 신곡 7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녀의 네 장의 앨범(4,5,캐롤음반,베스트 앨범)은 96~99년 4년간 1억장을 돌파했고,여기에 타이타닉 OST는 포함조차 되지 않았으니,90년대 후반은 그야 말로 셀린 디옹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날 남편 르네가 후두암에 걸려 활동을 중단하면서 남편 병간호에 나섰다. 다행히 르네의 병은 호전을 보였으며 시험관 시술로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개인 새생활이 안정을 겪으면서 6집 'A New Day Has Come' (1200만장 그해 판매순위 2위.) 와 7집 'One Heart' (600만 장)가 연이어 발매되었지만 예전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라이베이거스에서 장기 공연을 하면서 여전한 가창력을 발휘했다. 그 해에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판 앨범 (1위는 에이브릴 라빈, 두 앨범간 판매량 차이도 얼마 없었다.) 을 중박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그 전 앨범들에서 워낙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 것과 대비되는 점, 또 6집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차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싱글이 없었다는 점이 상대적인 저평가를 받는 이유인듯.
앨범도 앨범이지만 라이브 활동이 인상적인 디바로도 꼽힌다. 2007~09년의 'Taking Chances Tour' 는 역대 라이브 투어 중 11위(여성 중 3위. 그 위의 2개는 어느 여왕님)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라스베이거스에 공연장을 새로 지어 레지던스 쇼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2003~07년의 'A New Day' 에 이어 2011년부터는 'Celine' 을 진행 중이다. 2019년(!)까지 계약된 상태다. 셀린디옹의 콘서트 티켓은 2000~2009년에만 7.2억 달러,환율 1000원만 잡아도 7200억이 넘게 팔렸다. 또한 2006년쯤에 셀린 디옹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나왔고 그것을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아예 공연 장소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양쪽으로 나뉘어진 음악 활동으로 인해 라이브 투어 또한 세트리스트를 영어권 대상과 프랑스어권 대상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어권 세트리스트가 영어/프랑스어 곡이 대략 반반 섞인 구성인 데 비해 영어권 세트리스트는 한두 개 정도의 프랑스어 곡만이 포함되는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역대 프랑스어 싱글 중 유일하게 영국 차트에 들었기 때문인 듯. 늘 끼는 곡은 'Pour que tu m'aimes encore'. 2008년 서울 공연 당시 셀린의 코멘트는 '한 곡 정도는 프랑스어 곡을 불러야 해요' 였고 거의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응은 공연 전체에서 최하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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