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사망: 1963.8.9 ~ 2012.2.11
본명: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Whitney Elizabeth Houston)
국적: 미국
활동분야: 대중음악, 영화
출생지: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Newark)
팝의 여신은1963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소울·가스펠 가수인 어머니 시시 휴스턴(Cissy Houston)과 알앤비 가수인 숙모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0대 시절에는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알앤비·디스코 그룹 마이클 제이거 밴드(The Michael Zager Band)의 <라이프즈 어 파티(Life's A Party)>(1978)에 백 보컬로 참여하며 음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팝 밴드 머티리얼(Material)의 <메모리스(Memories)>(1982), 미국 싱어송라이터 폴 자바라(Paul Jabara)의 <이터널 러브(Eternal Love)>(1983) 등에 보컬로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1984년 미국 시트콤 《김미 어 브레이크!(Gimme A Break!)》의 ‘케이티스 칼리지(Katie's College)’ 편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드라마와 시트콤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1985년 데뷔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발표했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1985),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1986),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후 러브스 미)(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1987),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Didn't We Almost Have It All)>(1987) 등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1990년대에는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믹 잭슨(Mick Jackson) 감독의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포레스트 휘테커(Forest Whitaker) 감독의 1995년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페니 마셜(Penny Marshall) 감독의 1996년 영화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 경력을 쌓았다. 《보디가드》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199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와 <아임 에브리 우먼(I'm Every Woman)>(1993년 4위), 《사랑을 기다리며》의 <엑스헤일 (슙 슙)(Exhale (Shoop Shoop))>(1995년 1위), 《프리처스 와이프》의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1997년 15위) 등 사운드트랙의 음악으로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 미국 알앤비 가수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결혼했지만,
(영화 보디가드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다고 하네요...)
2000년대 들어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으며 마약에 중독됐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나왔고. 2002년 앨범 《저스트 휘트니…(Just Whitney...)》로 활동을 지속했지만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저조했다.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했고 비슷한 시기 그동안 부인해 왔던 마약 복용에 대해 시인했다.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를 발표하며 재기했으나 2012년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ㅠㅠ
팝의 여신인 휘트니 휴스턴은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수많은 후배 가수의 본보기가 되었다. 미국 알앤비 가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Celine Dion)과 함께 ‘1990년대 최고의 여성 보컬 3인’으로 여겨진다. 알앤비, 어덜트 컨템퍼러리, 댄스음악, 가스펠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함으로써 팝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매체로부터 ‘퍼스트레이디 오브 알앤비(First Lady Of R&B)’, ‘퀸 오브 팝 뮤직(Queen Of Pop Music)’ 등의 칭호를 들었다.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회 연속 1위 기록을 보유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하다.
대표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1985)과 《휘트니》(1987) 등이 있다. 대표곡으로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 미국 재즈·알앤비 가수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 <디든트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 미국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미국 싱어송라이터 샤카 칸(Chaka Khan)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아임 에브리 우먼> 등이 있습니다.
아래 목록은 휘트니 휴스턴의 앨범 목록입니다.참고해주세요,
1985년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1987년 《휘트니(Whitney)》
1990년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이트(I'm Your Baby Tonight)》
1998년 《마이 러브 이즈 유어 러브(My Love Is Your Love)》
2002년 《저스트 휘트니…(Just Whitney...)》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
[디스코그래피: 사운드트랙 앨범]
1996년 《더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필모그래피: 영화]
1992년 《보디가드(The Bodyguard)》 레이철 머론 역
1995년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사바나 잭슨 역
1996년 《프리처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 줄리아 빅스 역
1997년 《신데렐라(Cinderella)》 요정 대모 역
1997년 《스크래치 더 서피스(Scratch The Surface)》 본인 역
2012년 《스파클(Sparkle)》 엠마 역
휘트니 간단 요약,
11세 때 미국 뉴저지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시작한 휘트니 휴스턴은 1985년 발표한 데뷔 음반이 2,3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앨범(1,0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한 앨범)에 오름과 동시에 역대 여성 가수의 솔로 데뷔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됐다. 특히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인 <아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가 담긴 앨범은 4,200만 장이 팔렸으며, 이 곡은 당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간 1위를 차지해 당시 역대 최장기간 1위 기록을 세웠다.
휴스턴은 1980~90년대 흑인 특유의 소울(soul : 영혼을 울린다는 의미의 창법)이 가득하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 정교한 감정처리 등으로 팝계를 장악했다. 디바(diva)라는 칭호를 가장 먼저 얻었으며, 1990년대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과 함께 3대 디바로 불렸으나, 가창력과 인기 등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라는 평을 받았다. 누적 음반판매량 1억 7,000만 장, 그래미상 6회, 빌보드 뮤직어워드 16회,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22회 등 총 415번의 상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가수로 기네스북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휴스턴은 1992년 가수 바비 브라운과 결혼한 이후 불행한 결혼 생활과 약물 중독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브라운과 이혼한 뒤 제작자 데이비스와 2009년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를 발매했지만, 약물을 끊지 못해 완벽한 재기에는 실패했다. 휴스턴은 2012년 2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버리 힐스의 베버리힐튼 호텔에서 향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익사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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